[문화리뷰] 대자연의 위엄…사랑과 욕망의 서사 경청
검색 입력폼
문학/출판

[문화리뷰] 대자연의 위엄…사랑과 욕망의 서사 경청

-장웨이의 ‘어신(魚神)을 찾아서’ 감상기
고재종 시인

고재종 시인
장웨이의 ‘어신(魚神)을 찾아서’는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진리 탐험기다. 그 과정에서 대자연의 위엄을 배우고 사랑과 욕망의 서사를 경청하며 자기의 꿈을 완성해가는 너무 순수하고 절절한 소설이다. 태초 그대로 보존된 듯한 심심산골에 사는 소년이 평생 딱 한번 먹어본 물고기 냄새를 잊지 못한다. 초근목피의 생활에서 물고기를 잡아 배부르게 먹고 부자가 되는 길은 어부가 되는 길밖에 없음을 자각한 소년은, 그 길로 물고기를 잘 잡아서 어신(魚神)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스승을 찾아 나선다.

이는 중국의 전통 무협소설의 정석을 따르는 전개다. 결핍이나 원한에 찬 주인공이 검술도사인 스승을 찾아가서 제자가 되고, 검술을 배운 뒤 결핍을 해소하거나 원수에 대한 복수에 성공하며, 그 과정에서 사랑까지도 쟁취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검(劍)은 물고기로 바뀌고, 검술은 물고기 잡는 기술로, 사랑의 쟁취는 스승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소년의 물고기 잡는 기술은 나중에 산이나 계곡, 강 등지에서 물고기를 잡는 ‘한수’에 머무른 스승을 넘어, 큰물이나 바다까지 나아가 물고기를 잡는 ‘수수’에 이르러 물속동굴 속의 진짜 어신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간다.

그러나 이 성장기는 중국무협소설 같은 복수극이나 서양의 성장소설처럼, 큰 꿈을 쫒거나 진리를 찾아서 험한 세상 혹은 가혹한 운명이라는 인간조건과 싸우며 삶을 역동적으로 추진해가는 그 장쾌한 드라마와는 결이 다르다. 그건 소년이 만난 어신인 스승 때문이다. 소년의 원래 상상 속에 있는 어신은 물고기를 잘 잡는 최고의 능력자다. 그 능력 곧 절정의 기술은 험한 산골에서의 생존의 힘이자 소년이 닿고자 한 일생일대의 꿈이다. 하지만 소년이 마침내 만나게 된 어신은 그의 상상을 뒤엎는다. 사실 그 어신은 늙고 병든 노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만 먹으면 큰 물고기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는 잡지 않는다. 큰물을 찾아가지도 않는다. 더 큰물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면서도 멈출 줄 안다. 절정의 기술을 욕망의 극대화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작은 물고기는 잡지 않고, 그물 등을 이용해 어린 새끼까지를 마구 잡는 방법도 쓰지 않으며, 물고기가 맨손인 만큼 잡는 사람도 맨손이어야 한다며 도구를 사용하는 것마저 경계한다. 온전히 평생을 익힌 손재주만으로 물고기를 잡는데, 이는 자연과 생태에 대한 겸손한 예의다.

소년은 물론 처음에는 물고기를 잘 그리고 많이 잡는 비법을 배우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이 가르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임을 깨닫는다. 물의 흐름을 읽는 법, 계절을 기다리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잡아야 할 때와 놓아주어야 할 때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절제의 가치이자 자연의 흐름에 대한 순응의 방식이다. 오늘날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더 많이 개발하고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을 발전 혹은 진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인간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하나의 아름다운 질서다. 인간은 그 질서의 주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늙은 스승은 물고기를 정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고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 스승은 소년을 특별한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비법도 전수하지 않는다. 소년은 오랫동안 노인의 곁에서 살아가며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다만 온몸으로 배운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스승의 슬픈 사랑이야기다. 스승 노인이 물고기를 잡는 데 있어 ‘한수’에 머무른 데는 이유가 있다. 스승의 아버지도 어신이었는데 그것을 질투한 친구가 헤엄을 잘못 치는 아버지를 큰물 속으로 고기 잡기를 유인하여 죽게끔 했다. 그러자 그 아들인 스승도 죽일 것을 염려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도망치게 하여 평생을 산속에 들어가 사는 바람에 한수로 살았던 것이다. 물론 스승의 산중독거는 아버지를 죽인 그 원수의 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한 것도 한 이유였는데, 그 원수의 딸 또한 어릴 때 사랑을 약조한 스승을 잊지 못하여 홀로 산속에 살았으나 두 분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 결국 스승이 죽은 뒤에야 주인공의 매개로 연인이 스승의 집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그 슬픈 사랑의 비극서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고 아름답고 아득하다.

어쩌면 소설은 욕망으로 무장한 황홀한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되,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한 마리의 큰 물고기, 그 물고기야말로 어신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신비 앞에서 그만 손을 거둘 줄 아는 자세에 오버랩시킨 듯도 하다. 그래서 찾을 수 없는 어신과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고재종 gn@gwangnam.co.kr         고재종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