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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영 작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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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영 작 ‘Human (인간-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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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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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포스터 |
| 최재영 화가 |
서른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중반 영국 유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최 작가가 지속해온 인간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회화적 탐구를 집약하는 자리로, 먹과 칼을 이용한 초기 스크래치 작업에서 2019년 이후 심화된 연작, 그리고 2025년부터 새롭게 전개하고 있는 골판지 콜라주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재료를 관통해온 작가의 조형적 궤적을 한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인체와 얼굴이 중첩되고 확장되는 대형 화면들은 각각의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인간 군상처럼 구성하고 있다.
특히 먹과 칼을 이용한 스크래치 작업과 골판지 콜라주 신작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면서 서로 다른 재료와 제작 방식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밀도와 물성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을 오랫동안 관통해온 질문으로 ‘인간은 과연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가 따라붙듯 그의 화면에서 얼굴과 신체는 하나의 완결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대신, 하나의 얼굴 안에서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나고, 신체는 서로 중첩되고 분절되며 다시 연결된다. 때로는 독립된 존재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거대한 군집을 이루기도 한다. 단순한 인체의 변형이나 조형적 실험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요구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정한 자아와 관계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그의 조형언어는 1990년대 중반 영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의 담당 교수는 한국에서 온 작가에게 서구 회화의 형식을 반복하기보다는 동양 회화의 전통과 한국적인 재료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작가는 캔버스와 유화물감에서 벗어나 두꺼운 종이와 먹을 선택했다. 그러나 먹만으로 자신의 내면과 당시의 감정, 인간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를 느꼈고, 결국 붓 대신 칼을 들었다는 설명이다.
검은 먹으로 뒤덮인 화면을 날카로운 칼로 수없이 긁어내자 먹 아래에서 흰 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선들은 마치 상처처럼 화면에 남았고, 반복되는 긁기의 행위를 통해 어둠 속에서 인간의 얼굴과 신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회화가 물감을 덧붙이며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라면 작가의 작업은 오히려 표면을 제거하고 상처 내는 행위를 통해 형상을 만들어냈다. 지우는 행위가 곧 그리는 행위가 되고, 상처가 하나의 선이 되어 인간의 모습을 형성하는 역설적인 회화 방식이었다.
‘Embrace’와 ‘Human Relationship’ 연작에서 수많은 인간의 신체는 마치 실타래처럼 서로 얽혀 있다. 각각의 인물은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의 신체는 또 다른 신체와 연결되고, 그 관계는 다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존재로 나타난다. 친밀함과 긴장, 연대와 충돌, 불안과 상처가 수없이 반복되는 선 속에 축적되면서 화면은 하나의 복잡한 인간관계의 지형으로 변화한다.
이런 작업의 흐름은 2025년 10월부터 시작된 골판지 콜라주에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작가는 먼저 캔버스 위에 인간의 형상을 스케치하고 이를 트레이싱한 뒤, 골판지를 형태에 따라 일일이 가위로 잘라 화면 위에 하나씩 붙여나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열된 골판지의 결은 빛과 시선의 변화에 따라 미묘한 명암을 만들어내며 평면의 인체에 독특한 부피와 구조를 부여한다.
여전히 그의 작업에서 ‘선’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칼로 먹을 긁어내면서 선을 발견했다면, 현재 골판지를 자르고 배열하며 붙이는 과정을 통해 선을 구축한다.
이를테면 작품 ‘Human Forest’(2026)와 ‘Human Being’(2025)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러 방향의 선으로 분절되고 다시 결합한다. 하나의 얼굴은 단일한 표정을 갖지 않고 여러 얼굴과 시선을 품으며, 신체 역시 명확한 하나의 경계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읽힌다.
미술생태연구소 백종옥 소장 역시 이번 전시 평문에서 스크래치 연작과 골판지 연작이 재료와 형식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스크래치의 선이 골판지의 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재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나의 작업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요구받는 현대인의 존재를 탐구한다. 중첩된 얼굴과 몸짓은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 관계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빠르게 소비되고 표준화되는 사회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존재를 상징하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조건을 질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리아트센터 남궁윤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을 통해 그 질문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의 작업에서 새로운 물성과 형상으로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최재영 작가는 조선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윔블던 아트칼리지(Wimbledon College of Arts,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에서 Fine Art 석사(M.A.)를 취득했다. 광주를 비롯해 서울, 부산, 대구, 런던, 고베, 버지니아 등 국내외에서 30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인간 존재와 정체성 및 사회적 관계를 탐구하는 회화를 중심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8.24 (월) 08: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