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말랑이’를 샀나요? 내일은 무엇을 버리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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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기고] ‘말랑이’를 샀나요? 내일은 무엇을 버리실 건가요?

김유빈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책임활동가

김유빈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책임활동가
요즘 SNS를 보다 보면 귀엽고 말랑말랑한 장난감인 ‘말랑이’가 자주 눈에 띈다. 감자나 빵 모양부터 다양한 캐릭터 상품까지, SNS와 영상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제품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말랑이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귀여운 물건을 보면 한 번쯤 사고 싶어진다. 다만 말랑이 유행을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유행하는 물건들은 유행이 지나면 다 어디로 갈까?” 이 질문은 말랑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키링, 캐릭터 굿즈, 텀블러, 의류처럼 SNS에서 유행하는 수많은 제품이 같은 질문 앞에 놓여 있다. SNS의 유행은 순식간에 바뀌지만, 한 번 만들어진 물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 따르면 지난 6월 말랑이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28%, 검색량은 281.6%나 증가했다고 한다. 슬랑이, 왁뿌볼 같은 연관 상품의 거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문제는 이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는 방식이다. 국내 인형·완구 제조업체는 2005년 461곳에서 2019년 80곳으로 급감했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국내 생산 기반은 오히려 축소된 셈이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값싼 수입 소재들이다. 말랑이는 EVA폼이나 스펀지, 슬랑이는 슬라임 성분, 왁뿌볼은 왁스와 점토 등 여러 재질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싸게 사서 짧게 쓰고 가볍게 버리는 구조가, 제품이 설계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물건을 계속 사게 될까. 한국언론진흥재단 2024 소셜미디어 이용자 조사를 보면 국내 인스타그램 이용률은 38.6%지만 20대는 80.9%에 달한다. 알고리즘은 같은 제품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이러한 노출은 ‘필요해서 사는 소비’와 ‘남들이 사니까 따라 사는 소비’의 경계를 허문다. 여기에 ‘품절 임박’, ‘지금 아니면 못 산다’ 같은 마케팅 문구가 붙으면 판단은 더욱 빨라진다. 가격마저 저렴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결국 SNS의 노출 방식, 희소성을 강조하는 판매 전략, 저렴한 가격이 삼박자를 이루며 “사는 결정”을 쉽게 만들고, 동시에 “버리는 결정”마저 가볍게 만든다.

이런 구조에서 흔히 나오는 해법은 “필요한 만큼만 신중하게 사자”는 조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중한 소비” 역시 결국 소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더 잘 사는 방법”이 아니라 “사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는 일, 즉 소비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함에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물건을 고르기 전에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렇게 쉽게 쓰이고 버려진 물건은 결국 폐기물이 된다. 2023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생활계폐기물 발생량은 433㎏이다. 짧은 주기로 사고 버리는 소비 패턴이 이 무게를 계속 늘리고 있다. 광주도 예외는 아니다. ‘제2차 광주광역시 자원순환시행계획’은 1인당 하루 생활폐기물 발생량을 0.92㎏에서 2027년까지 0.89㎏으로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분리배출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애초에 덜 만들고, 덜 사고, 덜 버리는 것이 먼저다.

다행히 요즘 SNS에서는 미니멀 라이프, 무지출 챌린지, 옷장 비우기, 중고거래 인증 같은 콘텐츠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직 소비 유행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이 흐름이 더 크게 퍼지길 바란다. 말랑이가 순식간에 유행했듯, “안 사는 게 멋있다”, “있는 것을 오래 쓰는 게 자랑스럽다”는 감각도 새로운 유행이 될 수 있다. 소비를 줄이는 일이 참고 견디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의 근사한 취향이 될 때, 자원순환의 속도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의지만으로 완성되기는 어렵다. 복합재질 장난감류는 여전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사각지대에 있고, 판매 플랫폼 역시 재질 표시나 배출 정보를 제공할 의무에서 자유롭다. 덜 사고 싶은 선택을 뒷받침할 사회적 인프라(지역 중고 거래 인프라, 수리 공방 등)가 함께 구축돼야 그 마음이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힘 역시 “덜 사도 괜찮다”는 대중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유행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을 유행시킬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오늘의 ‘말랑이’가 내일 또 다른 캐릭터 상품으로 대체되는 대신, “덜 사는 삶”이 새로운 유행이 되면 어떨까. 광주의 자원순환은 바로 그 작은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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