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강제동원 손배소 항소심도 "피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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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강제동원 손배소 항소심도 "피해 인정"

원고 6명 중 4명 유지·2명은 소멸시효 이유로 감액
유족들 "배상액보다 강제동원 피해 인정이 큰 의미"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계열사에 강제동원된 피해자 유족들이 재판을 마친 뒤 꽃다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계열사에 강제동원된 피해자와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도 법원이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일부 원고에 대해서는 상속지분과 채권양도, 소멸시효 등의 법률적 사유를 반영해 배상액을 일부 감액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박정훈)는 강제동원 피해자 고 이상업씨와 윤재찬씨의 유족 등 원고 6명이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고 6명 가운데 4명의 배상액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상속지분과 채권양도 관계,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배상액을 일부 감액하고 지연이자도 일부 조정했다.

유족 측 대리인인 박인동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핵심은 1심과 마찬가지로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는 점”이라며 “감액된 부분은 상속지분이나 채권양도, 소멸시효 등 법률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감액 부분에 법리 오해가 있다고 판단되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배상액보다 피해 사실을 사법부가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계열사에 강제동원된 피해자 유족들이 재판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소송의 원고인 고 윤재찬씨(1917~2010)는 곡성 출신으로, 1942년 일본 후쿠오카현의 미쓰비시광업 탄광에 강제동원돼 1945년 12월까지 약 3년간 강제노동을 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탄광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 시달렸고, 식사는 작은 주먹밥이 전부였다. 반항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폭행을 당했고, 갱도 운반 작업 중 사고로 양다리와 발목, 무릎 등을 크게 다쳤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복적인 폭행을 당해 평생 난청에 시달렸으며, 약속받았던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우체국 예금 도장만 들고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암 출신인 고 이상업씨(1928~2017)는 16세였던 1943년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 탄광으로 끌려가 지하 1,500m 막장에서 하루 15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을 강요받았다.

당시 일제의 징용령은 만 17세 이상 남성만 노무자로 동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지만, 이상업씨는 나이 제한마저 무시된 채 강제동원됐다. 그는 훗날 “지옥 같은 노동과 굶주림, 구타 속에서 죽어간 소년이 차라리 부럽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혹독한 노동 끝에 진폐증을 얻은 그는 세 차례 탈출을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탈출해 해방 후 귀향했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를 남겼고, 2016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윤재찬씨의 아들 윤출호씨는 “아버지는 해방 이후에도 해방 사실조차 모른 채 일본 탄광에서 일하다 1945년 12월 귀국했다”며 “평생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를 법원이 1·2심에서 모두 인정해 준 것만으로도 유족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이상업씨의 아들 이선희씨도 “아버지는 평생 일본 제품을 쓰지 말고 일본과 거래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당시의 고통을 잊지 못했다”며 “배상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조만간 아버지 묘소를 찾아 술 한잔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미쓰비시 측이 상고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단순한 배상금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외면받아 온 강제동원 피해를 우리 사법부가 다시 확인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끝까지 법적 판단을 받아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쓰비시광업은 현재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으로, 군함도(하시마 탄광)와 사도광산 등을 운영하며 다수의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전범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글·사진=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글·임영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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